소문학회의 경북지부장으로서 올해도 석곡 이규준 선생님의 묘소참배를 추진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제기와 제수용품들을 차에 실어 동해면의 약전으로 향하였다.
석곡 이규준 선생은 구한말의 실학자이다. 이제마 선생과 동시대의 사람이다. 석곡은 의학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는데 그 어떤 뛰어난 의학적 업적보다 더 뛰어난 것은 나를 그 제자로 두고 계신다는 것이다. ㅎㅎ
지금 현재도 약전이라고 불리는 도구의 지명이 그 선생님으로부터 출발이 되었고, 현재 전국에서 알게 모르게 석곡의 실학사상을 배우시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은 서울에서 주역을 가르치시는 교수님과 그 제자분들이 석곡의 묘소에 오실 것이고 또 동해면장님을 위시한 지역유지분들이 함께 할 예정이다.
날씨 참 좋다. 행사를 진행하기에도, 등산을 하기에도 딱 알맞다.
약전삼거리에서 먼저 향토사학자이신 황인 선생님과 악수를 한 후 지역유지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은 포항지역에서 한문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또 함께 하기로 하여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금광1리로 향하였다.
앗! 1년만에 다시 오니 옛날의 그 길이 아니다. 갑자기 헛갈린다. 지금 도로 공사 중이어서 길이 이상하게 되어 있다. 급하게 옛날 기억을 되살려 뒤따르는 차들을 바른 길로 인도를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길치인데 시간을 크게 허비할 뻔 하였다.
폐광이 있던 지역에 모두 주차를 한 후 석곡의 묘소를 향하였다.
가을의 풍광이 아름답다. 길에는 국화와 코스모스가 그동안 내가 오기를 기다린 듯 반갑게 꽃잎을 흔든다. 간간히 보라색의 수줍은 청사초롱모양의 꽃이 인사를 한다. 그동안 진료실에서 좁아진 시야가 꽃들과 바람과 바다로 인해 확 트여진다.
묘소에 도착한 다음 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아참. 방송국과 신문기자들이 오신 것을 얘기하질 못했네.
기자분들의 인터뷰를 도와드리고, 회장단을 소개시켜 드리고, 석곡의 묘소 앞에 있는 묘갈명이라는 비석의 내용을 강독하였다.
마치고 사진 한 컷. 찰칵!
정리를 하고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 석곡의 제자이자 바로 나의 스승이신 무위당 이원세 선생님의 산골처(유골을 뿌린 곳)가 있다.
98세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제자들의 한의학발전을 위해 몸을 내맡겼던 스승님. 빨리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치열한 학문적 업적을 남기셨던 분.
그분의 산골처에서 국화꽃을 헌화하고 모두 묵념을 하였다.
원래는 여기에서도 무위당선생님에게 묘제를 지내는데, 행사의 시간관계상 올해는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묵념으로 대신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산골처 주위가 북적거리겠다고 농을 건넸더니 옆에서 무슨 말이냐고 물어본다. 나는 죽으면 화장을 하고 싶은데, 그때 선생님 옆에 뿌려지고 싶다고 내 마음의 한켠을 열어보였다. 죽어서도 또 선생님을 만나 다시 배우고 싶다고.
그랬더니 자기도 미리 자리잡아놔야겠다고 옆에서 거든다.
다음 행사 일정이 있는 석곡선생님의 생가로 향하였다. 아직 종부가 되시는 분이 그곳에 계신다. 인사를 드리고 석곡의 목판본과 여러 자료들을 구경한 후 드디어 점심식사하러 횟집으로 고!
포항의 참가자미 회를 먹으러 서울에서 일부러 오신 회원님의 입맛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대절한 버스가 주차하다가 남의 집 벽을 무너뜨렸다. 버스 기사 아저씨 마음 아리겠다. 오늘 일당 다 날라가게 생겼네. 무너진 벽 집주인 그래도 사람 좋다. 7만원에 합의를 봤다.
총무에게 얘기해서 이따 아저씨 팁을 좀 더 드리라고 부탁 하였다. 아저씨도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실래나?
올해는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와서 소문학회 허리 휘겠다. ㅋㅋㅋ. 오늘 횟값 많이 나오겠는걸. 그래도 손님이 많은 것이 나로서는 반갑다. 다음에도 많이 많이 오시면 좋겠다.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동안의 반가움을 한잔의 술로 회포를 나누었다.
오늘은 석곡선생님 후손이신 종부님도 같이 참석을 하셨네. 이때까지 한번도 점심식사를 같이 하지 않으셨는데 오늘은 기분이 나신 걸까? 많이 드시고 가시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탁트인 도구의 바다와 함께 오늘의 행사를 시원하게 마무리짓는다.